Neville Symington을 소개 하겠습니다. 그분은 분석가와 환자가 어떤 점에서는 하나의 single system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즉, 두사람이 융합된 성격의 한 유기체로 된다는 겁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환자와 분석가가 분석을 시작하는 순간 그들은 하나의 illusionary system을 이룬다고 합니다.
--- 두 사람 공히 스스로의 환상을 만들어 놓습니다. 가장 흔한 것은 분석자는 분석자라는 환상과, 피분석자는 피분석자라는 환상이지요. 문제에 대한 공유 보다는 주는 사람 받는 사람의 관계가 고정이 되어 버립니다.
분석자는 반드시 피분석자에게 무엇인가를 주어야 하는 입장이 되어 버리고, 피분석자는 분석자를 위해 무엇인가를 가져와야만 하는 환상에 사로 잡힙니다. 이 두 환상이 합쳐져서, 분석이 아닌 놀이가 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의사 간호사 놀이 처럼요.
분 석가는 일반 사회 생활보다 훨씬 더 이 관계에 푹 빠지게 되고 분석이 진행되면서 분석가는 서서히 그러한 관계에서 빠져 나옵니다. 이런 점에서는 전이 - 역전이 는 한 single system의 2가지 요소입니다. 환자와 분석가 모두 서로가 신기루에 사로잡혀 있다가 분석이 진행되면서 서서히 이러한 미망의 관계에서 빠져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delusion 혹은 illusion은 분석가와 환자에게 모두 적용됩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저항으로도 볼 수있는데 저항은 원래 전통적으로는 환자의 입장에서 생기는 것인데 이것은 분석가에게도 생길 수 있습니다.
--분석가나 피분석자나 서로의 내면 세계를 드러내기 힘들어하지요.
과연 저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고 의구심이 들기 마련입니다.
일 상적인 진료 과정에서도 일어나는데, 의사는 환자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환자가 만들어 놓은 환상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해야지만 환자가 쉽게 수긍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곤 환자가 나가고 나면 다시 뭔 증상일까 하고 머릿속으로 생각하게 되고, 그 세션은 의미가 없어져 버립니다. 분석가는 그저 환자가 원하던 상에 맞추었을 뿐이니까요. 다른 패턴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분석가는 피분석자가 만들어 놓은 환상으로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저항) 스스로를 과장하거나 본인의 의견을 아주 강력하게 표현합니다. 권위적으로 눌러 버려서 피분석자로 하여금, 본인의 생각을 따라오게 만들어 버리지요. 흔히 카리스마 라고 표현되는데, 호 악의 딱 중간입니다.
좋은 분석 시간이 될 수 없습니다.
그 러나 Symington이 주장한 것은 이 저항이 바로 ‘과정(process)'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즉, 서로가 그러한 ’착각‘의 단계에서 빠져 나오려 하질 않습니다. 이 저항이 분석을 가로막습니다. 그렇기 떄문에 여기에서 빠져나와야 분석이 진행됩니다. 분석가가 내면의 자유를 찾을 때 비로소 환자의 독립 또한 촉진 될 수 있습니다.
--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왜 ?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행위하고 말하는 것이 왜? 그렇게 말하고 행위할까 고민해 봐야 겠지요.
단순하게 환자를 위해 휴지를 뽑아준다든지, 눈물 흘릴때 수건을 준다든지, 왠지 손을 잡아주어야 할것 같다든지
하는 등의 행위들 또한 분석의 대상이 됩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일 수도 있지만, 환자가 원해서 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환자가 만나는 대상들은 분석가와 동일한 환경에 노출됩니다.
환자 스스로의 좋고 싫음이 있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나 사람들만 만날겁니다.
그렇게 만나는 사람들은 환자와의 관계를 위해 환자가 만들어놓은 환상속의 인물이 되어가구요.
이런 환상 상황에서 분석가가 벗어나지 않으면, 분석은 실패합니다.
초기 분석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세션이 끝난 다음에 내가 뭘했지? 하고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결국 환상속에 그대가 되어 그 환상을 놀이처럼 즐긴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모든 과정이 선명히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한 내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듯이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장 힘든 과정입니다.
------ 영국병원에서 같이 근무했던 정신과전문의 우이혁선생님 글입니다. -----